(사진 = 픽사베이)
'장차 미래에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갈 기술이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면 바로 블록체인과 인공지능(AI)이다. 최근 들어서는 말 많고 탈도 많은 블록체인보다 AI에 대한 관심이 더 높은 모습이다.
물론 AI 역시 부침이 많은 분야다. 원천기술이라 할 수 있는 인공신경망의 기원은 1957년 퍼셉트론(Perceptron) 이론이다. 이후 다층 퍼셉트론으로 발전했으나 계산이 복잡하고 데이터가 부족했다. 결정적으로 컴퓨팅 파워가 뒷받침되지 않아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데 인터넷 발달로 방대한 양의 정보가 쌓이고 컴퓨터 성능이 개선되며 딥 러닝으로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특히 대규모 자본을 바탕으로 한 기업들이 하나, 둘 뛰어들기 시작하며 AI 기술 발전 속도는 학계 예상을 뛰어넘고 있다. 일례로 2014년 필자가 미국에서 머신러닝을 배웠던 수업의 담당 교수는 당시 AI 기술에 대해 "현재 얼굴 감지(detection)는 충분히 가능하지만 얼굴 인식(recognition)은 한참 멀었다"는 평가를 한 적 있다. 그런데 몇 년 지나지 않아 스마트폰에 안면인식 기능이 보편화됐다. 무엇보다 OpenAI의 챗지피티(ChatGPT)의 등장은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과 함께 AI의 잠재력을 재확인한 사건이기도 했다.
블록체인 업계 역시 AI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제시된다. 무겁고 느린 블록체인 합의 메커니즘에 AI 기술을 도입해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이나 복잡한 어려운 온체인데이터 분석에 AI를 활용하는 방안 등이 등장하고 있다. 올해 고차원적인 온체인데이터 분석 툴로 큰 관심을 끌었던 아캄인텔리전스(Arkham Intelligence)가 대표적이다.
다만 이러한 종류의 시도는 블록체인의 본질적인 특징을 부각하기보다는 부수적인 솔루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블록체인 메커니즘 효율화 역시 AI 기술을 접목하기에는 아직 AI 기술의 예측 가능성이나 신뢰도가 높지 않아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생각이다.
한편, 블록체인과 AI의 만남을 두고 최근 관심을 두게 된 관점이 있다. 앞서 언급된 아이디어와 다른 것이 있다면 바로 '블록체인이 AI를 어떻게 활용할까'가 아니라, 반대로 'AI가 블록체인을 어떻게 활용할까'에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얼마 전 뇌과학자로 잘 알려진 장동선 박사의 강연 내용을 접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AI 기술에 블록체인이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용인 즉, AI 기술이 발달해 한 사람의 지능을 복제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른다면, 자신이 직접 강연을 다니지 않아도 AI가 대신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언어로 강연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미래를 그렸다. 그런데 이때 블록체인의 대체불가토큰(NFT) 기술이 이 AI가 정말 장동선의 AI가 맞는지 확인하는데 쓰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소프트웨어의 진위 여부에 큰 관심을 두고 있었다. 음원 및 영화 등 디지털 콘텐츠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컴퓨터 OS나 문서작업 소프트웨어 등 분야에서 불법복제물과 오랜 기간 고투를 치르고 있다. 상기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웠던 이유 중 하나는 불법복제물이 공급자에게는 매우 중요한 이슈지만 막상 이를 사용하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진위여부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소프트웨어가 AI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AI는 그 특성상 이용자가 해당 서비스의 퀄리티를 판별하기가 어렵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가짜 엔진이 탑재된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는데 심지어 그것이 문제가 있는 것인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불만족스럽더라도 오리지널 AI 기술 자체의 한계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제품의 진품 판별 문제가 명품가방같이 현실세계에서는 이미 중요한 이슈로 자리 잡았다. 그간 소프트웨어 또는 온라인상의 서비스에 대해서는 그다지 주목받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AI의 등장은 소비자가 관련 상품을 소비하는 데 있어 소프트웨어의 진품 판별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특히 AI가 상대적으로 많이 접목되고 있는 금융 및 투자 상품 같은 경우 이 문제가 더욱 중요할 수 있다. 해당 로보트레이딩 프로그램에 악성코드가 심겨 있을 경우, 단순 손실을 보는 것이 아니라 원금 자체가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는 딥페이크 기술을 악용해 가짜 영상이 증거 자료인 마냥 사용될 위험도 있다. 이는 NFT 기술을 일상에 적극 활용해 '가짜 영상'을 판별할 수 있다면 관련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NFT 하면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수집형 NFT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블록체인 업계조차 그 지속가능성에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그런데 대체불가능한 NFT의 성격은 수집형 디지털 아트보다는 위에 언급했듯이 진품 판별 같은 기능 면에서 더 파급력이 있을 수 있다. AI와 블록체인의 만남은 단순 기술적인 편의성을 넘어 AI에 인격과 권리가 부여되는 인문학적인 사건일 수도 있다. 언뜻 보면 별 관계없어 보일 수 있는 두 신기술이지만, 그 누구보다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원문 링크 : 딜사이트 <인공지능과 블록체인의 만남은 어떤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