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브라질 정부는 중국과의 상호 무역과 투자에서 달러를 통하지 않고 자국통화를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브라질 헤알화 또는 중국 위안화를 사용하겠다는 것인데, 위안화 국제결제 시스템인 CIPS를 이용함으로써 사실상 위안화를 결제통화로 삼은 것이다.
현재까지 러시아, 이란, 베네수엘라가 원유를 위안화로 결제하고 있고, 최근 사우디아라비아가 이 대열에 합류했다. 말레이시아는 미국 달러와 IMF에 대한 의존도를 줄일 필요성을 강조하며 중국에 아시안통화기금(AMF) 창설을 제안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에 대한 SWIFT 배제는 다른 나라로 하여금 달러 시스템의 대체재를 모색하도록 하는 촉매제가 됐다. 위안화의 세 확장이 급진전되는 가운데 달러 패권의 위축은 기정 사실화 되는 모습이다. 기존 국가 간 거래에 있어 미국 달러 및 국제결제 시스템인 SWIFT가 더 이상 단일 표준으로 쓰이지 않는 것이다. 특히 원유 결제대금을 달러로 지불하는 '페트로 달러'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면서 전세계에 달러를 공급해 오던 미국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체로 기술적 현상으로 여겨지는 가상자산 업계가 이러한 정세 변화에 주시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비트코인의 경우 특정 국가에 휘둘리지 않는 중립자산으로서 달러의 역할 공백을 매울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보다 직접적으로는 이미 CBDC를 개발 및 운영 중인 중국이 디지털위안화를 추진하는 데 있어 블록체인을 활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이더리움이 아닌 다른 퍼블릭 블록체인을 이용한 위안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을 허용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비트코인 채굴 및 ICO를 전면 금지하며 가상자산 비친화적인 행보를 보여준 중국이지만, 올 초 홍콩증권선물위원회(SFC)가 개인 투자자의 가상자산 거래를 허용하는 것을 검토하며 기존 입장에서 선회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오는 6월 1일부터 가상자산사업자(VASP) 라이선스를 도입해서, 일정한 자격을 갖춘 거래소에 전문 투자자뿐 아니라 일반 투자자도 접근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홍콩은 가상자산 시장 허브로 자리매김 함으로써 과거 떠나보냈던 많은 관련 기업들을 다시 불러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 최근, SEC를 필두로 가상자산에 보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미국과 상반된 모습이다.
이에 대한 기대감을 반영해 이번 달 중순에 열린 '홍콩 웹3 페스티벌 2023' 에는 업계 주요 인사 300여명을 비롯, 투자기관, 규제기관 대표, 학계 전문가들이 한데 모인 한편, 수 만명의 참가인원이 운집하며 성황리에 마무리 됐다. 미국 최대 블록체인 행사인 '컨센서스 2023'이 금주 열리는데 비슷한 시기에 열리는 두 행사 간 분위기 비교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위안화 국제화 및 디지털위안화를 추진하는 한편,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중국을 비롯한 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국가들을 기반으로 새로운 국제준비통화창설 계획을 밝혔다. 올해 8월에 다가오는 BRICS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주요 의제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최근에는 기존 5개 국가 외에도 아르헨티나, 이란, 말레이시아 등 제3국가들이 참여의사를 타진하며 BRICS+가 형성되고 있다.
BRICS 공용화폐로 위안화가 쓰일지, 아니면 참여국 화폐를 바스켓으로 하는 새로운 통화가 탄생할지 알 수 없지만, 여기에도 가상자산 활용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원하든 원치 않든 가상자산 관계자라면 미국동맹 외 국가들의 행보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지난주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는 "미 제재 영향 안 받는 자산 비축 중"이라 밝힌 가운데, 그 자산이 비트코인일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포브스는 부탄 국부펀드에서 비트코인을 매입하고 있다는 정황을 보도했다.
사실, 미국이라는 단일 패권 국가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국제질서 안정에 유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다극체제로의 움직임은 가속화되고 있고, 그 중심에는 화폐가 있다. 새로운 화폐질서를 두고 비트코인을 비롯한 블록체인 기술이 끊임없이 언급되고 있으니, 가상자산 현상을 단순 기술혁신 이상의 흐름으로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원문 링크 : 딜사이트 <국제질서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가상자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