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개구리 캐릭터 '페페(Pepe)'를 기반으로 만든 페페코인(사진=페페코인)
현재 가상자산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화제는 페페(Pepe) 코인이다. 페페는 맷 퓨리(Matt Furie) 작가의 'Boy's Club'에 등장한 개구리 캐릭터로 특유의 있는 슬픈 표정 덕분에(?) 가상자산 커뮤니티에서 애용되는 밈(Meme)이다.
지난 4월 15일 페페 코인이 처음 등장한 이후, 초기 4만달러(한화 약 5300만원)였던 시가총액은 불과 20일여일 만에 120억달러(15조9000억원)까지 치솟으며 30만배라는 천문학적인 수익률을 기록했다. 그런데 페페 코인 열풍이 얼어붙은 가상자산 시장에 활기를 더해 주었을지는 모르나 블록체인 기반의 웹3.0 발전에는 별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
최근 웹3.0 업계는 다소 가라앉은 분위기다. 비트코인이 연초 이후 70%가량 상승했지만 웹3.0 업계 전반과는 다소 온도 차가 있다. 송금 및 가치저장 기능으로 주목받는 비트코인과 달리 웹3.0은 범용적인 탈중앙 서비스 제공을 목적으로 한다. 가격은 차치하더라도 서비스의 대중화 등 가시적인 성과가 더뎌, 세간의 관심도 줄고 참여자도 지쳐가는 모습이다.
낙관론자들은 블록체인 혁신을 연신 외치고 있으나 과연 우리 실생활에 어떤 혁신을 가져올 수 있는지 명쾌하게 답하는 이는 드물다. 이런 가운데 밈 코인만이 활개를 치니 여태 내재가치 없는 투기 놀이에 불과하다는 조롱을 받고 있는 것이다.
웹3.0 혁신 잠재력은 분명 존재한다. 다만 가격 상승과 기술만능주의에 도취된 나머지 현실에서 너무 멀어진 감이 있다. 대중이 체감하는 혁신에 집중하는 'back to basic'이 필요한 시기다.
블록체인의 대중화가 더딘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제일 쉬운 환경 탓부터 하자면 규제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각국 정부가 가상자산 관련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고, 미국 SEC는 일부 프로젝트에 대하여 뒤늦게 증권성을 주장하며 어깃장을 놓고 있다. 산업 전반이 잠재적 불법 소지를 안고 있으니 대중화가 될 리 만무하다.
다만, 규제가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 할 수는 없다. 차량공유 서비스 '타다'의 예를 보더라도 규제가 발목을 잡았으나 적어도 소비자들이 애용하고 기존 택시업계를 뒤흔든 서비스였다. 웹3.0 서비스 중에도 '수요는 많은데 규제 때문에 이용이 어려운 서비스가 있는가?'라는 물음에 답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업계 관계자마저 회의감에 빠지는 것이다.
웹3.0이 이런 서비스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데에는 사용성의 문제가 있다. 웹3.0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블록체인 지갑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이를 관리하는 것이 어렵고 처음 이용을 위해서 일정 금액의 코인을 직접 사서 입금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무엇보다, 이용자 입장에서 기존 인터넷이 아닌 웹3.0을 이용해야 할 뚜렷한 유인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을 두고 흔히 제2의 인터넷 혁명을 이야기하지만 정말 그 정도의 혁신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인터넷 혁명을 직접 경험한 사람으로서 이메일, 검색포털은 도저히 안 쓸래야 안 쓸 수 없는 획기적인 서비스였다. 뛰거나 말을 타고 다니던 시절 자동차의 등장에 비견할 수 있다. 블록체인의 경우 가상자산의 거래 및 투자 외에는 이렇다 할 효용을 주는 서비스가 없다. 코인의 내재가치는 가격이고, 유틸리티는 도박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블록체인을 두고 진정한 소유권 회복을 외치지만, 사실 대중은 그런 거창한 이념에는 관심이 없다. 경제적 이득이 발생한다 한들 정상적인 환경에서 유의미한 소득을 창출하기 어렵다. 오히려 다단계 및 투기라는 잡음의 소지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블록체인 기반 웹3.0이 기존 비효율을 크게 개선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필자가 생각하는 웹3.0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바로 공증(公證)이다. 기존에는 어떤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국가 또는 신뢰받는 기관의 보증이 필요했다. 여기에는 적지 않은 비용을 수반한다.
간단한 예로 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체제에서 국제송금의 실제 과정을 들여다보면 중앙은행 감독하에 송금은행, 중계은행, 지급은행이라는 최소 세 개 기관을 거친다. 영업시간의 시차로 인하여 송금에 길게는 3일이 소요되고 일부 제3국가의 경우 10% 이상의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인터넷이 곳곳에 보급된 현재에도 비효율 지점은 남아있는 것이다.
블록체인을 활용하면 특정 주체의 보증 없이 낮은 비용으로 빠르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 흔히 웹3.0을 무정부주의라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정부라는 비용을 쓰지 않고도 가능토록 만드는 데 있다. 이를 위해 그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탈중앙성이 신성시되는 것이다. 결국 블록체인 혁신의 핵심은 비용 절감이라 할 수 있고, 특히 국가 간 상호작용 시 빛을 발하는 것이다. 블록체인이 국제송금을 넘어 일상생활에서 효용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더욱 비용이 낮아질 필요가 있다.
그런데 블록체인은 수많은 컴퓨터를 필요로 하는 기본적으로 이용단가가 비싼 서비스다. 다만, 모든 혁신에는 초기에 단가 낮추기 노력이 존재했다. 자동차, 인터넷도 마찬가지였다. 도로와 통신망이라는 초기 인프라 구축이 국가 주도로 이뤄졌기 때문에 체감하지 못 했을 뿐이다. 웹3.0 혁신이 더딘 것은 인프라 구축이 순수 민간 자본에 의존하여 이뤄지고, 분산원장 특성상 특정 주체의 노력만으로는 어렵기 때문이다.
다소 침체된 것 같지만 현재도 웹3.0의 비용 낮추기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계정 추상화(Account Abstraction)를 통해 이메일로도 손쉽게 지갑을 관리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고 이더리움을 보다 싸고 빠르게 쓸 수 있는 레이어2의 약진도 두드러진다.
웹3.0 혁신이 어떤 혁신이 될지는 아직 지켜봐야 한다. 자동차 등장보다 임팩트는 작더라도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가는 혁신이 될 수도 있고, 특정 목적에서 극강의 효율성을 보여주는 비행기가 될 수도 있다. 그 소요 기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최초의 테슬라가 나온 지 10년 지나서야 전기차가 대중화됐다. 까마득한 여정이지만 웹3.0도 그 나름의 발걸음을 착실히 나아가고 있다.
원문 링크 : 딜사이트 <블록체인 혁신 유감, 그래도 기차는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