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오라운지 전경 (사진=황지현 기자)
지난주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인 하루인베스트의 입출금 중단에 이어 금융당국에 가상자산사업자(VASP)로 등록한 델리오마저 출금이 정지되며 투자자 불안감이 확대되고 있다. 대외로 드러난 바는 없지만 투자자 피해 규모가 작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FTX 사태로 비롯된 씨파이(CeFi)의 위기에 대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씨파이(중앙화 금융)란 일반적으로 가상자산 관련 금융서비스를 중앙화된 기관에서 제공하는 경우를 뜻한다. 예를 들어 업비트, 바이낸스 등 거래소 서비스와 최근 문제가 불거진 델리오 같은 예치 및 투자상품 서비스가 있다. 씨파이는 자산의 권리를 중앙 서비스에 위탁하는 것이 특징으로 디파이(Defi, 탈중앙화 금융)의 반대 개념으로 주로 쓰인다.
디파이는 운영주체가 불명확하기 때문에 결함이 발생하더라도 대처하기가 어렵다. 씨파이는 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 신속하게 대처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해킹 등 예기치 못한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이용자 자금에 대한 통제권을 완전히 상실할 수 있는 위험이 존재한다.
씨파이 투자상품이 가상자산을 취급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일반 투자자의 자금을 모아 투자한다는 점에서 구조적으로 기존 투자운용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즉, 투자자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규제당국이 씨파이에 대해 일반 금융서비스와 다르게 취급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태 가상자산 금융서비스가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것은 관련 법적 제도가 미비한 탓이 크다. 또한 기존의 까다로운 규제를 그대로 적용했다. 유망산업을 초기에 사장시켜버리는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함이기도 하다.
그간 씨파이뿐만 아니라 핀테크 업계에서는 산업발전을 위해 규제완화, 예외적용의 목소리가 높았다. 기본적으로 금융업이 대표적인 규제산업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투자 서비스에 대해서는 도박, 마약류 관리에 가까운 엄격한 규제가 적용된다.
모든 투자는 투자자 본인의 책임이라지만 한 사람의 잘못 또는 실수의 크기와 그로 인한 결과의 무게가 비례하기는커녕 기하급수적인 양상을 보인다. 핀테크 활성화 이래 여러 금융규제가 완화됐지만 운용업만큼은 그 대상에서 소외된 이유이기도 하다. 운용업 관련 규제는 잠시 완화가 되었다가도 라임 및 옵티머스 사태 등으로 인해 재차 강화되는 경우가 반복됐다.
투자상품 운용 및 판매 관련 규제의 핵심 중 하나는 불완전판매 방지로서 투자 상품의 투명성과 관련 위험에 대한 이용자의 충분한 인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투자자가 손실을 보더라도 그 책임을 투자상품이 아닌 이를 선택한 본인의 책임으로 인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즉, 관련 위험에 대하여 운용사와 투자자에게 부여되는 책임의 간극을 최소화시키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투자 상품의 종류에는 자문, 일임, 집합투자(펀드) 등이 있다. 자문 및 일임이 투자자 본인계좌를 통해 직접 투자하는 것과 달리, 펀드는 자금을 모집하여 간접적으로 투자된다. 본인계좌에 대한 조회 및 통제권을 가지는 자문 일임 상품은 태생적으로 투명하게 운용되지만 위험 고지 관련 규제가 굉장히 엄격하다. 펀드의 경우 자금을 직접 받는 만큼 자격 기준이 가장 엄격하다. 이를 통해 감독기구에서 위험평가 기능을 일부 수행할 수 있다. 따라서, 펀드는 위험고지보다는 운용의 투명성 제고에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하루인베스트와 델리오는 고객 자금을 받아 운영하기 때문에 펀드의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다. 아직은 이들 업체에 대한 규제당국의 통제가 허술한 것도 문제지만 상품 운용 현황 등에 대한 공시의무 규정 등이 미비하여 불투명한 측면이 없지 않다.
자금을 직접 모집한 운용사가 높은 수익률을 위해 제3자에 투자를 위임한다면 관련 내용을 충분히 공개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운용 재량이라는 명분 하에 고객의 선택 책임을 확대 해석하는 오류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가상자산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내막은 밝혀진 바 없지만 이번 사태 역시 투자자가 감내했던 위험 대비 훨씬 큰 위험이 수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씨파이 관련 일련의 사태로 디파이가 대안으로 제시되는 배경에는 이를 통제할 규제가 없어도 수탁 및 투자 책임이 온전히 투자자 본인의 것으로 인식되고 투자 대상에 대한 극단적인 투명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악의는 없었다'라는 해명은 변명이 될 수 없다. 가상자산사업자(VASP)의 경우 라이선스를 내준 금융당국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공인된 가상자산사업자의 자격요건뿐만 아니라 이 자금을 운용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적절한 감독이 필요할 수 있다. 가상자산 사업에 있어 자유도는 양날의 칼이다. 향후 유사 사례를 막기 위해 칼 자체를 빼앗으면 안 되겠지만 가상자산 운용사 및 상품의 적격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