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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업은 원래 규제산업이다

2023-02-15 14:23


(출처=MichaelWuensch from Pixabay)


최근 미국의 가상자산 거래소 크라켄은 미등록 스테이킹(staking) 서비스를 제공한 혐의로 해당 서비스를 중단하고 벌금 3000만달러(한화 약 384억원)를 지급하기로 SEC(미국증권거래위원회)와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테이킹은 투자자들이 가상자산을 예치하면 일정 기간 후 이자 개념의 보상과 함께 되돌려주는 서비스다. SEC는 스테이킹 서비스를 사실상 금융상품으로 간주한 것이다.


나스닥 상장사 코인베이스 역시 크라켄과 유사한 스테이킹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코인베이스의 CEO 브라이언 암스트롱은 "정부의 과잉 대응으로부터 고객을 보호하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코인베이스는 경제적 자유를 위해 계속 싸워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비판에 앞서 금융업이 대표적인 규제산업이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특히, 자기자본이 아닌 타인자본을 활용한 금융 서비스에 대해서는 도박, 마약류 관리에 가까운 엄격한 규제가 적용된다. 한 사람의 인생을 한 순간 무너뜨릴 수 있는 파괴력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SEC의 불명확한 기준과 산발적 제재 조치 행태는 문제 삼을 만한 부분이다. SEC 위원인 헤스터 피어스 조차 "SEC는 스테이킹 서비스가 증권 판매에 해당하므로 기관에 등록됐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관련 상품은 SEC에 등록되지 못하는 상태다"라며 사전에 가이드라인의 부재를 비판했다.


규제당국 역시 할 말이 있다. 인터넷 및 블록체인 인프라의 등장으로 수많은 핀테크 업체들이 쏟아지고 있고 저마다 기존에 없던 방식으로 금융 서비스를 선 보이고 있다. 규제당국 입장에서는 시시각각 새로운 형태의 금융서비스에 일관되고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기 어려워졌다. 이에 따라 당국자의 주관적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많아지며 원성을 살 일이 많아진 것이다.


높은 비용과 비효율성을 이유로 기존에 어려웠던 일을 기술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IT혁신이다. 그런데 핀테크는 편의성과 효율성만 추구하는 일반적인 IT와는 다르다. 금융 서비스의 최우선 가치는 편의성이 아닌 투자자보호다. 금융 업체에 라이선스를 주고 영업을 허가해 주는 규제당국에서는 이들을 관리하여 잠재 피해를 예방하는 책임이 있다.


필자는 과거 핀테크 스타트업에서 비대면 금융상품을 기획하여 서비스를 제공한 적이 있다. 돌아보면, 자문일임 라이선스를 부여받은 금융업자로서 당시 업무의 8할은 지뢰밭 같은 금융규제에 대응하는 것이었다. 서버 및 개인정보 보안, 고객에 대한 투자위험 안내, 자금 운용 컴플라이언스 등을 기술적으로 효율화하되 빼곡한 규정을 모두 지키는 프로세스를 구축해야 했다. 이때 들였던 비용과 시간이 당시 서비스의 핵심 차별점이자 우리가 구축한 진입장벽이었다.


결국 핀테크의 정수는 투자자보호 규제를 기술적으로 풀어내는 데 있는 것이다. FTX 붕괴에서 경험했듯, 실무자로서 피곤하고 형식적인 것 같아도 고리타분한 규제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크라켄 역시 미국 정부에서 정식으로 허가를 받은 거래소로서, 그 안의 모든 금융서비스로부터 투자자를 보호할 책임이 규제당국에도 있다. 때문에 적절한 간섭을 통해 피해를 예방하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다. 전통 금융사 역시 적지 않은 비용을 치르며 컴플라이언스 시스템을 갖춘 것이고, 흔하고 익숙한 수많은 펀드들 모두가 규제당국의 인가를 받은 상품이다. 인허가가 수반되는 산업은 밥그릇에 대한 정부의 비호와 간섭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사실, 크라켄 제재 관련 업데이트에 따르면 실상은 다소 시시한 것으로 보인다. SEC 결정문을 확인해 본 결과 스테이킹을 금지했다는 것은 오해였다. 크라켄에 대한 제재는 스테이킹을 제공한 사실 자체가 아닌 스테이킹 과정에서 '운용'으로 평가할 수 있는 행위를 한 점에 대해 제재받은 것이다. 크라켄은 이용자가 맡긴 코인을 스테이킹에 100% 활용하지 않았을뿐더러, 이와 관련한 위험성과 구체적인 보상 기준 및 자금 상황도 고지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번 SEC의 제재는 공정(fair)했고, 규제당국의 감시 시스템이 FTX 때와 달리 아주 잘 작동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탈중앙화된 대부분의 디파이(Decentralized Finance, 탈중앙 금융) 서비스들은 국가 정부의 간섭도 싫지만, 라이선스가 주는 특혜 역시 받을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규제당국이 책임졌던 감독 기능을 블록체인으로 대체하고 있고, 투명한 정보 공개를 통해 오히려 제2의 FTX 사태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특히, 프라이버시가 중시되는 가상자산 이용자들의 성향을 고려 시, KYC(고객확인제도) 절차가 까다로운 라이선스 사업자보다 디파이에 대한 수요가 지속될 것이다.


아크 인베스트먼트의 캐시우드 역시 정부 검열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탈중앙화가 해법이라고 언급했다. 이에 따라 코인베이스, 크라켄 같은 제도권 순응적 플랫폼과, 유니스왑(Uniswap), 메이커다오(MakerDAO) 등 탈중앙화된 플랫폼이 앞으로도 공존하며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예상한다.


원문 링크 : 딜사이트 <금융업은 원래 규제산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