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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골드러시와 비트코인

2023-01-18 14:02



세계금협회(World Gold Council, WGC)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공식 금융기관이 매입한 금이 673톤에 달하며 1967년 이후 55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특히,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은 3분기에만 약 400톤을 매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이 수치는 IMF가 공식 집계한 333톤(9월까지 누적)과는 괴리가 있는데, 런던금시장협회의 통계를 고려하면 WGC의 추정치가 더 정확해 보인다. 런던의 금 저장소(London Vault) 11월 잔고가 전년대비 500톤이나 감소했기 때문이다. 금 500톤은 현 시세로 300억 달러(한화 약 37조2000억원)에 달한다.


두 기관의 발표 수치가 이렇게 차이 나는 이유는 집계 방식의 차이도 있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금 매입 데이터를 IMF에 보고하지 않는 영향이 크다. 뒤집어 얘기하면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현대판 '골드러시'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골드러시에 나선 것은 중국, 러시아만이 아니다. 공식 데이터에 따르면 튀르키예(31톤), 우즈베키스탄(26톤), 인도(17.5톤), 카타르(14.8톤) 등 여러 非 서방 국가들이 금 보유량을 늘렸다.


지난해 금 수요 증가 배경에는 금융시장 불안으로 인한 안전자산 선호 심리의 영향도 있겠지만, 미국의 러시아 제재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은 러시아 중앙은행이 보유한 3천억 달러를 동결시켰다. 이 사건이 시사하는 바는 누구든 미국 이익에 반하는 것으로 간주될 경우 언제든 재산을 몰수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심어줬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현대 금융 시스템 내에서 달러가 얼마든 무기화될 수 있다는 사실이 각인됐고 FT 사설에서 이를 "tyranny of the dollar(달러의 폭정)"라고 표현했다. 특히 미국과 친하지 않은 국가들이 달러 의존도를 낮추는 행동에 나서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글로벌 지정학의 변화 속에, 러시아 및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과 미국의 대립 구도는 '페트로 달러'(석유 대금 달러 결제) 탈피 움직임도 가속화시켰다. 확실한 대체재가 없는 상황에서 탈 달러 현상은 금 같은 '중립자산'에 대한 수요를 자극했고, 그 결과가 55년만의 골드러시인 것이다. 사실, 55년 전인 1967년은 닉슨 쇼크와 브레트우즈 체제 붕괴의 서막이 되었던 런던골드풀 붕괴가 시작된 해이기도 하다.


여기서 말하는 '중립자산'은 지정학 리스크에 영향을 받지 않는 자산을 뜻하는 것으로 (달러와 달리)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사용을 금지할 수 없는 특징을 가진다. 금이 대표적인 중립자산이라 할 수 있는데 비트코인도 여기에 포함될 여지가 있다. 비트코인 역시 특정국가가 금지할 수 없는 자산이기 때문이다. 중국, 인도, 여러 이슬람 국가에서 수 차례 금지했지만 결국 제대로 성공한 사례는 없다.


최근 중립자산의 부상이 비트코인 낙관론자들을 설레게 하는 것은 희박한 가능성이지만 비트코인이 무역결제통화로 쓰일 미래를 그려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재가치 논쟁은 뒤로 하더라도 미국이 달러 패권을 순순히 포기할 리 없다는 주장이 있다. 그런데 미국이 러시아를 SWIFT에서 배제하며 달러를 무기화한 순간부터 '우리 편'이 아닌 국가에 대하여 달러 패권을 사실상 포기하는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현재 석유 시장에서는 달러의 대안으로 중국 위안화, UAE 디르함 등이 제시되고 아프리카 가나처럼 아예 금으로 대금을 지불하겠다는 국가도 있다. 아직 비트코인 위상이 결제통화 논의에 낄 수준이 못 되는 것은 아쉽지만, 달러 독주 체제에 균열이 생겼다는 점 만으로도 유의미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최근 논의되는 것처럼 제3통화를 쓰는 방안은 지속되기 어려울 수 있다. 미국 1강 체제의 서방진영과 달리, 러시아, 중국을 비롯한 중동국가들의 외교 역학관계는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상호 신뢰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결국 금 같은 중립자산을 모색할 공산이 크다. 아니면, 금 보다 빠르고 간편하며 보안성이 좋은 중립자산을 고려하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원문 링크 : 딜사이트 <현대판 골드러시와 비트코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