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6일 양일간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개최된 블록체인 콘퍼런스 'KBW2023: IMPACT' 현장 사진 (제공=KBW )
지난주 열린 '코리아블록체인위크 2023(KBW2023)'가 성황리에 진행됐다. 국내를 넘어 아시아 최대 블록체인 행사가 된 KBW에는 전 세계에서 6000여명의 웹3.0 관계자 모인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에 열린 '더 게이트웨이: 코리아' 방문객도 4000명 수준으로 올해 KBW2023 방문자는 1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번 행사에는 참석자 중 외국인 비중이 42%에 달할 만큼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한국의 블록체인 및 가상자산 시장이 이토록 주목받는 것은 무엇보다 활발한 가상자산 거래 시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 거래소 거래량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한때 글로벌 가상자산의 최대 현금화 창구라는 오명을 듣기도 했으나 국내 시장의 가상자산에 대한 관심 및 그 에너지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실제로 웹3.0 프로젝트를 대상으로 투자하는 벤처캐피털(VC)로서 수없이 많은 스타트업들을 만나보면, 공통적으로 한국 시장에 대한 높은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글로벌 블록체인 업계에서 한국 시장이 가지는 영향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금 의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블록체인 기술 및 가상자산을 활용 여부를 나타내는 지표 관점에서는 한국이 특별히 두드러지지 않는다. 불명확한 규제와 지지부진한 대중화(Mass Adoption)를 고려하면 여타 선진국뿐만 아니라 동남아 등 제3세계에도 미치지 못한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 시장의 최대 강점이라고 할 수 있는 가상자산 거래량 역시 압도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국내 가산자산 거래시장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90% 이상)을 보이는 업비트 역시 일거래량 기준으로 10~20위 권에 위치하고 있는 수준이다.
글로벌 가상자산 활용도 지형 (출처=체이널리시스)
그럼에도 한국이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영향력 높은 국가로 손꼽히는 이유는 종종 시장의 판도를 뒤흔드는 '게임 체인저'로 돌변하기 때문이다. 시장이 전반적인 상승 흐름을 보이거나 특정 테마 또는 가상자산이 이슈가 될 때, 국내 거래소의 존재감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순간적인 모멘텀만큼은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는데 국내 가상자산 시장이 이러한 특징을 가지는 배경에는 소위 '국민성'이 가지는 문화적 요소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유별난 위험선호 성향은 한국인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다. 기회가 있는 한 그 누구보다 용기백배해질 수 있는 사람들이다. 가상자산 특유의 높은 변동성에도 불구하고 전체 인구의 30%인 1500만명이 가상자산 거래 경험이 있으며 그중 현재 활성 이용자들이 600만명에 달한다.
특히 거래소 이용자들의 예치 자산 내역을 들여다보면 이러한 특징은 더욱 잘 드러난다. 가상자산이 내포하는 높은 위험으로 인해, 잘 알려진 비트코인의 보유량이 가장 높고, 그다음에는 이더리움, 마지막으로 그 외 가상자산(알트코인) 보유량이 가장 적은 것이 일반적인 구성이다. 그런데 업비트의 예치금 구성내역을 보면 그 순서가 정반대일뿐더러 알트코인의 비중이 무려 75%에 달한다.
2022년 3분기 기준 알트코인 보유 비중이 높은 한국 이용자 (제공=비스타랩스)
사실 이러한 위험선호 성향이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2000대 초반 한국의 파생상품시장은 글로벌 거래량의 30%에 달할 만큼 압도적인 세계 1위였으며 그 중 무려 40%가 리테일 투자자로부터 비롯됐다.
두 번째 요인으로 한국 특유의 높은 유행 민감도를 언급하고 싶다. 한국은 패션뿐만 아니라 식문화, 디지털 분야에서 유행을 선도하고 있다. 한 설문조사에서 '유행을 잘 아는 사람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라는 질문에 77%가 '그렇다'라고 할 정도로 한국인에게 유행이란 중요한 가치다. 유행을 선도하는 것은 어려울지라도 뒤처지지 않으려는 의지가 매우 강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압도적인 스마트폰 보유율이나 간편결제 시장의 성장에서 보듯, 디지털 보급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새로운 기술에 대한 열린 태도는 글로벌 웹3.0 기업으로 하여금 훌륭한 테스트베드로 비춰지기도 한다.
위험선호가 높은 동시에 한 가지 트렌드에 높은 민감도를 보이는 시장에서는 쏠림현상이 종종 목격된다. 한국이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에서 모멘텀을 만들어 내는 배경이기도 하다. 앱토스의 사례를 보면 한국 시장의 영향력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앱토스는 메타(구 페이스북)에서 블록체인 사업을 진행했던 개발자들이 나와 만든 블록체인 메인넷의 토큰으로 작년 10월에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앱토스 팀원의 화려한 이력만큼이나 관심이 높았는데, 11월 초 FTX 파산의 영향으로 상대적으로 미적지근한 가격 흐름을 보였다. 당시 업비트의 앱토스 월간 거래량은 한국을 제외한 Top3 거래소인 바이낸스, OKX, 바이비트의 합산 거래량 대비 5% 수준에 불과했다.
그런데 올 초 가상자산 시장 전반이 반등할 당시 앱토스는 한때 4배 가까이 오르며 상승장을 주도했다. 1월 업비트의 앱토스 거래량이 8.5조원까지 치솟았다. 이는 다른 3개 거래소 거래량을 모두 합친 9조원에 육박하는 수치다. 사실상 연초 앱토스의 상승을 한국 시장에서 주도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앱토스 토큰의 월간 거래량 거래소별 비교 (제공=비스타랩스)
높은 위험 선호도와 유행에 민감한 국민성을 두고 많은 자아비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도박성이 강한데 개성이나 주관이 없다라는 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도전적인 면모는 단일 방향의 막대한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한다. 과거 IMF 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 등으로 똘똘 뭉쳐 이겨낸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스포츠에서 말하는 결정적인 순간 승부를 결정짓는 '크랙(The Crack)'이 바로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 내 한국의 위상이다.
원문 링크 : 딜사이트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의 게임체인저는 '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