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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자산의 테러 자금 지원 논란과 프라이버시 문제

2023-11-09 17:43

(사진 = 픽사베이)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은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가상자산으로 조달했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하마스 등 3개 무장 세력은 미국 정부에 의해 테러단체로 지정돼 국제 은행 결제망을 통한 자금 거래가 불가능하기에, 자금 운반이 쉬운 암호화폐를 활용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가상자산 분석업체 비트오케이는 2021년부터 하마스와 연결된 계좌에 4100만달러(약 533억8542만원)의 가상자산이 입금됐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와 이스라엘 정부의 압수물을 토대로 팔레스타인 하마스와 레바논의 헤즈볼라 등이 최근 몇 년 사이 가상자산 계좌를 통해 거액의 자금을 모금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마스는 각종 제재를 피하기 위해 2019년부터 공개적으로 가상자산을 통한 자금 모집을 시도해 왔다. 다만, 그 규모가 실제로 크게 부풀려졌다는 것이 업계 시각이다. 다른 블록체인 분석기업 체이널리시스는 월스트리트저널의 추정치가 테러 자금 조달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관련 서비스 제공업체로 가는 모든 흐름을 계산한 것으로 보이며, 테러와 관련되지 않은 자금이 포함돼 있었다고 밝혔다.


사실 테러 조직이 자금조달에 가상자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무엇보다 자금 이체 기록 등 블록체인 데이터가 투명하게 공개되기 때문에 대규모 테러 자금을 조달할 때 좋은 수단이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마스는 지난 4월 기부자에 대한 '적대적' 활동이 증가하고 있다는 이유로 더 이상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자산 모금을 중단했다. 최근 이스라엘 공격 이후 약 2만달러(약 2604만원)의 가상자산이 기부됐으나 대다수가 이미 동결된 바 있다.


거액을 옮기기 쉬운 가상자산의 이점을 이용해 지하경제가 양성된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실상은 달러 같은 현금보다도 숨기기 어렵다는 것이 가상자산의 특징이다.


이렇게 보면, 가상자산이 가진 투명성이 좋은 점만 있는가 하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임금과 재산 등의 개인정보나 기업 간의 계약 사항이 무분별하게 공개될 수 있어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방해하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로 인해 오래전부터 블록체인 업계에서는 가상자산에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한 여러 시도가 있었다.


특히 '다크코인'의 대표 격인 모네로는 기존 가상자산이 거래내역을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공개하는 것과 달리 암호화 기술을 통해 거래내역 정보를 드러내지 않는 게 특징이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마약 거래나 자금 세탁, 테러 자금 등 범죄 행위에 악용될 가능성을 제기하며 모네로를 비롯한 복수의 코인이 국내 거래소에서 퇴출됐다. 이 외에도 자금 흐름을 추적 불가능케 하는 토네이도 캐시가 북한 해킹 조직인 '라자루스' 등에 의한 범죄 수익의 세탁 가능성으로 미국 재무부의 제재를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프라이버시 관련 새로운 시도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은, 프라이버시가 그만큼 경제 활동에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애당초 출처와 규모가 민감할 경우 가상자산을 안 쓰면 된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지만 세상 모든 화폐와 금융시스템이 미국이나 한국처럼 안정돼 있는 것이 아니다.


베네수엘라와 같이 '하이퍼인플레이션'에 시름하는 국가에서는 자국 통화가 정상적인 기능을 하기 어렵다. 은행 계좌 보급률이 낮은 국가의 경우에도 가상자산은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 특히, 인력 채용이 탈국경화 됨에 따라 기존 금융시스템을 활용하기 어려워지고 있는 점도 있다. 현재와 같은 구조로는 가상자산으로 임금을 지급하는 때 직원의 처우가 고스란히 외부에 공개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자금 추적을 허용하면서도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형태의 기술이 등장하고 있다. 외부로 공개되는 정보 일부를 선택적으로 가릴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한다든가, 영지식(zero-knowledge) 증명 기술을 활용해 원하지 않는 정보나 개인신원이 공개되는 것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하기도 한다.


이들의 공통적인 고민은 어떻게 하면 규제당국에서 우려하는 불법적 자금 이동 및 세탁을 방지하는 동시에 최소한의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는가다. 이를 위해서는 규제당국 차원의 지원과 가이드라인이 필수적이다. 블랙리스트를 통해 불법적 자금이동을 방지하거나 화이트리스트를 도입하여 기존에 등록된 계좌에서만 출금이 가능하게 할 수 있다. 현재 블록체인 개발자들은 이러한 규제당국의 프로세스를 반영할 수 있도록 관련 프로토콜을 최대한 유연하게 구성하려 노력 중이다.


한편,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 이후 신시아 루미스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과 프렌치 힐 하원의원이 바이낸스와 테더의 테러 지원 가능성 관련된 서한을 미국 법무부에 보냈다. 그동안 가상자산에 대한 합리적 규제를 지지해 온 두 사람의 주장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가상자산에 온건한 입장을 지닌 정책입안자들은 가상자산을 무조건 제재하기보다는 현실적 문제를 직시하고 이를 최대한 양성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오기 마련이다. 무조건적인 배척은 오히려 각종 꼼수와 불필요한 자금 음성화를 부추길 수 있기에 가상자산의 프라이버시 관련보다 전향적인 규제당국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원문 링크 : 딜사이트 <가상자산의 테러 자금 지원 논란과 프라이버시 문제>